얼마 전 핸드폰으로 낯선 번호의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의아해하며 받아보니 전화의 주인공은 일전에 임금체불과 업체변경 문제로 몇 번 상담을 해 준 적이 있는 필리핀 레니(가명) 씨. 서로 안부를 묻고 반가워 할 겨를도 없이 레니 씨는 다급한 목소리로 문제가 생겼다며 얘기를 시작했다. 사정인즉, 필리핀으로 떠나며 자신의 통장을 한국에 남아있는 사촌동생에게 맡기고 갔는데 사촌이 비밀번호를 잘못 눌러 통장이 지급정지가 됐다는 것이다. 자신의 국민연금 반환일시금을 비롯해 제법 적지 않은 돈이 통장에 있는데 돈을 찾을 수가 없겠냐고 레니 씨는 답답해하며 방법을 물었다.
며칠 뒤 레니 씨의 친구 니레(가명) 씨가 문제의 통장을 들고 상담소로 찾아왔다. 들고 온 레니씨 명의의 통장은 경남은행 통장 하나와 외환은행 통장 하나. 둘 다 비밀번호 3회 오류로 지급정지가 되었고 예금액은 각 150만원과 200만원 정도였다. 먼저 외환은행에 문의를 해 본 결과, 외환은행은 다행히 필리핀 마닐라에 지점이 있어 그곳으로 여권을 들고 찾아가면 예금을 찾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놓겠다고 했다. 하지만 경남은행에는 필리핀 지점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있나. 위임장도 아무 소용이 없고 본인이 직접 찾아와야만 예금을 돌려 줄 수 있다는 답변이었다.
항상 밝은 표정의 긍정적인 니레 씨는 이 말을 전해 듣고도 자신들의 실수라며 웃으며 돌아갔지만, 제법 적지 않은 돈을 이런 단순한 실수로 통장 속에 묵혀야 한다는 게 마음이 편치는 않을 듯 싶었다. 그나마 레니 씨가 합법적 신분으로 체류하다 한국을 떠났기에 언제든 한국에 다시 입국해 돈을 찾을 수 있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
외국인노동자들의 통장(재)발급, 예금 문제는 상담소에 그리 드물지 않게 찾아오는 상담내용이다. 미등록노동자가 타인 명의의 통장을 쓰다가 통장 원주인이 임의로 예금액을 빼 간 경우, 통장을 사업주가 압류 해 문제가 생기는 경우, 비밀번호 오류로 지급정지가 됐는데 미등록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은행이 지급정지를 풀어주지 않는 경우, 이번처럼 통장 명의자가 외국에 있어 예금액을 찾을 수가 없는 경우 등 은행과 관련한 상담은 심심치 않게 찾아오고, 해결이 까다로운 것도 많다.
그나마 레니 씨는 합법체류 상태에서 출국했기에 ‘다음에 한번 관광 와서 돈 찾아가세요’라고 말하는 것이라도 가능했지만, 미등록 상태에서 출국해 재입국이 사실상 불가능한 외국인노동자의 경우라면 뭐라고 말 해 줄 수 있을까. 분명히 예금주가 존재하고 계좌 안에 돈이 있는데 국가가 다르다는 이유로 돈을 찾을 방법이 없다는 건, 은행이 그렇게 강조하던 ‘보안’의 문제 보다는 ‘배려’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상담팀 이소민 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