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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민족·다문화 시대의 경남만들기
이철승 목사(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 소장)


다민족·다문화의 현주소는

한국사회는 외국인 체류 100만 명 시대를 맞았다. 경남에도 거주 외국인이 6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제 거리와 일터에서 타 인종을 만나는 게 일상화되었고, 다양한 문화를 지닌 소수민족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지만 우리에게 여전히 그들은 외국인이요, 이방인일 뿐이다.
심지어 ‘국적을 취득하여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는 타인종 출신과 그들의 2세들’, 그리고, ‘미국 국적자로 살아가는 동포들과 그들의 2세들’ 중에 누가 한국인인가라는 질문에 재미교포를 한국인으로 당연히 여기는 풍조가 우리의 모습이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관념과 집단의식에는 국민주권보다 단일민족이라는 배타적 혈통민족주의 정서가 자리 잡고 있다.
급기야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한국은 다민족 사회가 된 현실을 직시하고 ‘단일민족’이라는 이미지를 극복하려는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이는 단일민족이라는 순혈주의 전통 속에 담겨있는 인종우월성의 관념이 인종차별을 부추겨 다인종으로 살아가는 한국사회의 미래가 우려스럽다는 지적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선 소수인종 일부가 사회구성원으로 섞여 살아간다고 해서 이를 빌미로 수천 년의 전통과 문화유산인 혈통민족주의를 문제 삼는 건 지나친 지적이 아니냐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 논란의 본질은 순수혈통민족주의를 지키려는 집단적 의지 자체가 아니다. 독일과 러시아 같은 백인종 중심의 국가처럼 배타적 혈통민족주의가 인종차별을 부추기는 문제가 핵심이다.
우리 혈통의 순수성을 자랑스러워하고 긍지로 여긴다면 마땅히 타 인종 또한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인류사회는 진보한다. 또한, 번영과 미래를 준비하며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 사회가 배타적 혈통민족주의를 넘어선 ‘다인종·다문화 공존’이라는 문명사적 요구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혹독한 결과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최근 유럽에서는 지금까지 펼쳐온 다문화정책에 대한 반성과 대안 마련에 관심이 한층 높아졌다. 지난 2005년 10월 27일 프랑스 파리 북동쪽 이민자들의 거주지역인 클리사수부아에서 경찰관의 검문을 피해 달아나던 이민자 출신의 소년 두 명이 송전소 변압기에 감전돼 사망했다. 이 사건은 대규모 이민자 폭동사태로 번졌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대표적으로 다문화주의에 기초를 둔 정책을 펴 이민자들이 살기 좋은 나라라고 알려져 왔다. ‘인종차별 금지’를 법으로 명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육과 복지 등에서 이민자들을 차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민자들은 프랑스 백인 주류사회가 보이지 않는 멸시와 조롱으로 비서구 이민자를 차별해왔다고 여겨왔고, 사회과학자들은 그 내면의 분노가 대규모 이민자들의 폭동으로 이어진 원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버토벡(Steven Vertovec, 1996)은 ‘다문화 사회’를 이른바 샐러드 볼(salad bowl) 같은 공존·공생의 다원적인 사회로 묘사한다. 주류 문화 속에 소수문화가 점점이 박혀 있는 모자이크 모양이 아니라, 상호 이해와 존중, 대화를 바탕으로 전체가 어우러지는 양태를 의미한다.
다민족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이민국가에서 사회 통합 이데올로기의 필요성이 다문화정책을 만들었다. 강요와 포섭으로 주류문화로 동화시키려 해온 다문화주의 정책의 위험성은 이번 폭동사태를 통해 신랄하게 드러났다. 프랑스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한 자성도 나오고 있다. 우리 사회는 ‘다민족 다문화’의 초기사회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초창기 서구에서 범했던 정책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10~20년 이후의 우리 사회상을 예측하며 정책을 수립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서로 다름과 차이를 배우는 인내가

경남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한국에 일반적으로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들의 분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시아 10여 개 국가에서 온 근로자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결혼을 통해 이주해 온 이민자들이 대부분이다.
우리 사회는 지난 2006년 기준 1.08명으로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경제활동인구 감소로 이어져 외국 인력의 유입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 중의 하나다. 한국사회는 외국인이 꾸준히 증가하는 데 대한 근본적 대책마련이 쉬워 보이지 않는다. 여성 노동력을 활용하는 정책수단 역시 저출산 문제를 더욱 강화시켜 대안으로 부족하다. 그리고 결혼시장을 둘러싼 사회문제의 현주소는 일시적인 문제이길 바랄지 모르지만, 세계 변화의 소용돌이는 한국사회에만 면죄부를 주지 않는다. 또한, 물적·인적자원의 빈번한 국제적 이동과 사회구조적 변화요인은 전통적인 우리 사회의 결혼풍습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런 사회현상은 결국 ‘다민족·다문화사회’의 변화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다민족·다문화 사회에 대응해야 한다.
우리는 개발과 발전이라는 산업화시대의 과제를 달성하려고 앞만 보고 서구의 학문과 종교와 문화를 열심히 배워왔다. 겉으로는 싫어하면서도 서구를 부지런히 추종했던 일본을 따라갔다. 그 결과 우리는 지금 서구의 눈으로 아시아를 보는 것이다.
해외시장 의존도가 높은 우리는 아시아 각 국가와 겉으로는 경제협력관계를 맺고 아시아 출신의 이주노동력을 50만여 명이나 받고 있지만, 우리에게 아시아는 경제개발과 시장지배의 대상이지 동반자라는 생각을 못해왔다.
아시아가 세계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가장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단일 문화권을 이루며 살아온 구미 대륙과는 달리 다양한 종교, 언어, 인종, 문화, 역사 등의 자산과 전통을 가지고 있다. 특히, 아시아는 서로 다른 다양성이 충돌하기보다는 서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관용의 일상화라는 동양철학과 가치관을 자산으로 물려받았다는 점에서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관용과 포용의 아시아적 전통과 문화유산을 근대화 이후 서구의 팽창과 더불어 큰 고통을 강요당하며 훼손됐다.
‘다민족․다문화 공존사회’의 가치관과 모델은 비서구권에 대한 우월주의적 서구문화 시야에서 벗어나 전통과 경험적 자산을 문화유산으로 물려받은 아시아를 새롭게 발견하는 일에서 출발해야 한다.
다문화 사회란 서로 ‘다름과 차이’를 ‘틀림과 차별’이 아닌 ‘이해와 존중’을 통하여 포용과 공존을 이루는 사회이다.
남녀와 세대 간에 그리고 내국인과 외국인 사이의 가치관과 문화의 ‘다름과 차이’가 상존한다. 그런데 이를 ‘틀림’으로 규정하여 항복과 수용을 강요하는 ‘차별’로 갈등과 통합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은 어리석음의 극치이다.
이주노동자들은 노동환경과 근로조건의 열악함보다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는 태도와 차별이 더 견디기 어렵다고 말한다. 가난한 나라 출신이라고 동정을 내세우며 무시로 업신여기는 언행과 심지어 식생활과 종교·문화의 차이까지도 가난의 원인으로 욕하며 훈계까지 듣게 될 때 느끼는 인간적인 모멸과 수모는 지울 수가 없다고 한다.
결혼 이민자들의 정기적인 모임에서 다문화 가정의 깊은 고충과 한국사회에 적응하면서 겪는 사연을 종종 접한다. 근래 들어서 지방자치단체와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대학에서도 다문화 가정을 돕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참여를 간청하여 한두 번씩 참석했던 경험을 들었다. 결혼이민자들이 참석한 프로그램은 한국어 교육, 전통예절교육, 한국 요리교육, 컴퓨터 배우기, 전통문화체험 등 다양했다. 다문화가정의 결혼이민자들이 느낀 소감은 처음에는 한국사회에 적응하는데 필요한 것으로 생각해 열심히 참석했는데, 대부분 교사로부터 ‘빨리 배워 한국인 되라’는 식의 강요 아닌 강요를 느끼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에 혼돈이 생겼다는 평을 늘어놓았다.
다문화에 대한 이해와 배려 없는 우리 사회의 관심이 혹시 값싼 동정심과 상처로 전락하지 않도록 유념해야 할 것이다.
서로 다른 인종과 문화가 한 사회의 구성체로 공존하려면 우선은 그 출발점이 다름과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려고 인내하며 경험하지 못했던 ‘다름’을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다민족·다문화 열린 민족주의로

변화를 두려워하여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회와 민족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객관적 환경의 도전 앞에 제대로 응전하지 못하면 역사의 생명력은 이어질 수가 없다.
각양각색의 새로운 상품이 매일 등장하듯 다양한 가치관과 문화가 공존하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단일민족, 단일문화 중심의 폐쇄적 민족주의가 우리 사회의 통일성과 통합의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아 왔다. 그러나 이제는 다민족·다문화가 공존해야 하는 열린 민족주의로 변화해야 한다. 전통적인 문화와 민족의 정체성을 허물자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우리 안의 타인 종과 문화를 이해와 존중으로 대하는 관용적 가치관을 계승하여 창조적 미래로 향하자는 것이다.
자신의 의견과 행동양식을 인정받는 길은 상대방의 의견과 행동양식을 존중해주는 것이다.
현대는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창조성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향한 창조적 발상을 찾고 있다. 획일적인 주입식 교육으로는 창조적 미래를 기대할 수가 없기에 다양한 체험학습 효과로 대안을 찾고 있지 않은가.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문화를 소유한 구성원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회적 태도와 의식은 창조성을 배양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일본은 이주민정책에 관한 중대한 정책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라는 사회적 문제에 대응하고자 종전과는 달리 조심스러운 이주민 정책과 개혁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6년 규제개혁협의회(Council on Regulatory Reform)는 이주정책의 개혁과 관련하여 우선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강화하려는 방침을 세웠다. 이는 앞으로 외국 인력의 유입이 확대되고 동아시아 지역 간의 국제협력이 강화될 것이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강화하는 개혁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이주정책 변화의 핵심은 인적자원개발과 다문화 공존(multicutural coexistence)정책으로 이를 추진하려면 현재 규제중심 행정기관인 법무성 이민국과 보건노동복지부 이 외의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현재 이민국은 ‘거주신분(Status of Residence)’을 결정하고 지방자치단체는 단지 ‘외국인등록 확인증(Foreigner's Registration Certificate)’을 발행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있지만, 지방자치단체가 자체적으로 외국인에 대한 특별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다. 그러나 앞으로는 지방자치단체가 다문화공존과 인적자원관리를 핵심으로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도 이주민 정책에 관한 중앙정부차원에서 변화의 흐름이 보인다. 외국인정책의 체계적 수립 및 추진을 위하여 2007년 5월 17일 ‘재한 외국인 처우 기본법’을 제정하였다. 이 법안 제정의 사회적 배경은 저출산 고령화 문제에 따른 체류외국인과 다문화가정의 증가현상, 그리고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외국인력 자원관리와 사회통합과정에서의 사회갈등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법안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과 권한을 기대할 수가 없다는 측면에서 다민족, 다문화 공존과 통합을 위한 정책목표의 구체적 행정수단에 어느 정도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 법에 따라 앞으로 5년 단위로 외국인정책을 수립할 때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과 대화가 필요하다.
최근 지방자치단체들은 지방의회에서 이주민관련 지원조례들을 만들고 있다. 경남은 기초자치단체에서 지원조례를 만들어 다문화가정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다민족·다문화 공존의 정책 목표를 향한 사업은 사회적 관심보다 미비하다. 관련 법률근거와 행정조직, 인적자원 그리고 재정에 자유롭지 못한 지방정부에 과중한 당위성만 요구할 수는 없지만, 경남의 거주 외국인들에 대한 초기적이고 지방정부의 의지로 집행 가능한 다민족·다문화 공존 사회를 향한 정책을 몇 가지 생각할 수 있다.
자치단체가 이런 외국인정책을 펼쳐보면 어떨까. 첫째, 초·중등학교를 대상으로 다민족·다문화의 날을 제정하여 다채로운 체험학습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다문화 체험 교육을 하는 것이다. 둘째, 지방자치단체 홈페이지를 통한 온라인 행정서비스에 외국인 이주자들을 위한 자국의 언어로 각종 정보 서비스 제공하는 것이다. 셋째, 경남에 사는 외국인 이민자 1세들 중에는 국제경쟁력을 지닌 인재들을 선발관리하고 기회를 제공하는 정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은 해외투자를 통한 동남아시아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현지문화와 정서를 이해하고 언어 소통이 가능한 전문 인력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모기업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여 훈련해 해외진출기업에서 활용하는 기업체들도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외국인 결혼 이민자 2세들에 대한 평등한 사회적 기회와 이중 언어를 구사하고 문화를 잘 아는 이민자 2세들에 대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정책마련도 중요하다.
한국의 이주노동자 정책을 연구하고 있는 재미교포출신 교수를 통해서 얼마 전 체험담을 들었다. 10대에 이민을 하여서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거쳐 국립대 부교수에 오른 그는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들처럼 미국에서 자신도 같은 경험을 겪었다고 한다. 이민자들이 겪는 음식, 언어, 종교 등 문화적 갈등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그 사회에 동화되어 극복되었지만, 인종에 대한 정체성 갈등은 여전히 남는다고 한다. 미 사관학교 출신인 그는 각종 장학금 혜택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외국출신 이민자에게도 시민으로서 평등한 기회와 권리를 누리며 미국 사회에 대한 고마움을 느꼈다고 한다. 소수민족출신으로 소외를 받고 살아온 경험들도 있지만, 자신이 미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의무와 권리를 주인 된 처지로 지켜나가야겠다는 정체성을 지니게 됐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 소수민족 출신은 한국인으로서의 자발적인 주체의식을 형성하고 있을까? 지금의 정치, 사회, 문화 영역의 정책은 우리 사회의 소수인종 출신자들과 그 2세들에게 20~30년 후 스스로 대한민국 구성원이라는 자발적 정체성을 지니도록 열린 민족주의 정책을 배려하고 있는지 반문해 보길 바란다.(2007.10.12. 경남발전연구원 15주년 기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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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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