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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민족ㆍ다문화 시대, 우리의 선택

 

이철승 목사(경남이주민센터 대표)

1. 유엔으로부터 권고 받은 한국 다민족?다문화의 현주소

 

한국 사회는 2009년 12월로 외국인 체류 120만여 명 시대를 맞이하였고, 경남 지역에도 거주외국인이 7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제 거리와 일터에서 다른 국적과 피부색을 마주치는 게 일상화되었고, 다양한 문화를 지닌 소수민족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숫자가 아무리 증가해도 우리에게 여전히 이주민들은 손님으로 온 외국인이요, 이방인일 뿐이다.

 

우리의 완고한 민족 의식을 드러내주는 퀴즈가 하나 있다. 심지어 “국적을 취득하여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타 인종 출신의 국민과 그들의 2세들”, 그리고 “미국 국적자로 살아가는 동포들과 그들의 2세들” 중에 누가 한국인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재미동포들을 한국인으로 당연히 여기고 있는 풍조가 우리의 모습이다. 이러한 우리사회의 관념과 집단의식 배후에는 국민주권 의식보다 단일민족에 집착하는 배타적 혈통민족주의 정서가 자리 잡고 있다.

 

급기야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다민족 사회가 된 현실을 인정하고 ‘단일민족’이라는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하기까지 했다. 단일민족이라는 순혈주의 전통 속에 담겨있는 우월적 의식이 인종차별적 사회통념을 부추김으로써 다인종으로 살아가는 한국사회의 미래가 우려스럽다는 지적이다.

 

우리의 ‘단일민족’ 신화는 일본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배하에서 나라를 잃어버린 백성들에게 독립에 대한 희망을 품도록 정신을 무장시키고자 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로서 등장한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역사로서의 단일민족은 근대이행기에 등장한 것일 뿐 우리는 본디 다민족국가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여러 이민족을 포용했던 고구려를 단일민족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겠는가? 또한 고구려인과 말갈 민족이 중심이 되어 세운 발해를 우리의 단일민족 역사로 편입시킬 수 있겠는가? 동으로 연해주와 서쪽으로는 요동반도 그리고 북으로는 송화강에 이르는 대제국 발해의 건국 배경은 다문화와 다민족 포용에 기초하지 않고는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고구려의 후계를 자처한 고려 역시 발해의 유민을 포섭하고 다양한 종족을 통합한 국가이다. 따라서 우리의 역사를 혈통민족주의(단일민족사)로만 이해할 경우 한국사의 기원은 근대 이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역사학자 이희근은 ‘단일민족’의 신화는 만들어진 역사라고 주장한다. 우리의 역사에 포섭되어왔던 이민족들의 흔적을 발굴해온 연구 결과 중국에서 이주해온 상층부는 성씨의 가문이 되어 정주해 왔으며, 하층부는 관아와 역참 등에서 잡역에 종사자로 또는 백정으로 전락하여 정주해 왔다는 것이다. 결국 하층부로 편입된 이민족은 오늘날 3D업종의 외국인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처지와 같았던 것이다.

 

한국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단일민족, 혈통민족주의로 정체성의 근거를 삼고 그것을 기준으로 한국인을 규정해서는 현재와 미래의 우리사회 구성원들인 타인종, 타문화의 정체성을 지닌 이주민들은 한국인이 아니면서 엄연한 우리사회의 시민으로 살아가는 모순을 결코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21세기 우리 사회는 이주민 국가인 미국의 시민 민족주의적 정체성의 한계를 넘어선 문화 세계시민적 민족주의에서 정체성의 근거를 찾아야 한다. 문화는 소통의 역사를 통해 장구하게 발전해왔다. 우리 고유의 문화란 처음부터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이민족의 문화와 소통하면서 우리가 전유한 것이다. 불교, 유교, 기독교의 문화는 우리 땅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면서 오랜 세월 우리가 전유해온 것이다.

 

문화의 위대함은 서로 다름에 대한 관용에서 나온다. 민족주의자 김구 선생님은 대한민국의 미래가 군사 강국이나, 경제 대국이 아닌 문화인류 국가가 되기를 소원했다. 물론 근대 한국의 역사가 혈통민족주의를 요구했던 시대적 당위성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21세기 다인종, 다문화사회 환경은 한국 사회가 세계시민사회 민족주의로 변화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현재 우리사회의 다인종, 다문화 출신 이주민을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그들에 대한 관용을 허용하지 못한다면 문화 인류 국가는 꿈꿀 수 없고, 우리의 미래는 암담할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 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민족 출신을 공화국 시민으로 동등하게 수용하지 못하는 한 ‘민주공화국’ 이라는 헌법 정신은 법전 속에서나 갇혀 있을 뿐이다.

 

최근 우리사회에선 소수 인종 일부가 사회구성원으로 섞여 살아간다고 해서 이를 빌미로 혈통민족주의를 문제 삼는 건 지나친 지적이 아니냐는 반론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독일과 러시아 등 백인이 다수인 국가들에서 분명히 배타적 혈통민족주의가 인종차별을 부추기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현실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가진 혈통을 자랑과 긍지로 여긴다면 마땅히 타 인종이 자신들에게 느끼는 긍지 또한 존중해야 공평하지 않을까? 인류 사회는 진보로써 번영과 미래를 준비하며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 사회의 배타적 혈통민족주의를 넘어선 ‘다인종?다문화 공존’이라는 문명사적 요구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경우 그 결과는 우리의 순수성만으로 항변하기에는 지독히 혹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수년 전 유럽의 이민자 폭동 사태는 이를 암시해준다.

 

최근 유럽에서는 다문화정책에 대한 그동안의 반성과 대안 마련에 시민사회의 관심이 한층 높아졌다. 2005년 10월27일 프랑스 파리 북동쪽 이민자들의 거주지역인 클리사수부아에서 검문하는 경찰관을 피해 달아나던 이민자 출신의 소년 두 명이 송전소 변압기에 감전 사망함으로써 촉발된 대규모 이민자 폭동사태가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대표적으로 다문화주의에 기초를 둔 정책을 펴오면서 이민자들이 살기 좋은 나라로 알려져 왔기에 충격은 컸다. 이 나라는 ‘인종차별 금지’를 법으로 명시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교육과 복지 등에서 이민자들을 차별적으로 대우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민자들은 프랑스 백인 주류사회가 눈에 보이지 않는 은근한 멸시와 조롱으로 비서구 출신 이민자들을 차별해왔다고 여겨왔고, 사회과학자들은 그들 내면에 도사린 분노가 대규모 이민자들의 폭동으로 이어진 원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버토벡(Steven Vertovec, 1996)은 ‘다문화사회’를 이른바 샐러드 볼(salad bowl)같은 공존, 공생의 다원적인 사회로 묘사한다. 주류문화 속에 소수문화가 점점이 박혀 있는 모자이크 모양이 아니라, 상호간의 이해와 존중, 대화를 바탕으로 전체가 어우러지는 양태를 의미한다.

 

다민족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이민국가에서는 사회 통합 이데올로기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다문화정책을 만들어왔다. 그러나 주류문화에 대한 강요와 포섭으로 주류문화로 동화시키려는 다문화주의 정책의 위험성에 대해 프랑스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통하여 자성해보자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에 비하면 우리 사회는 아직 ‘다민족 다문화’의 진입 초기 사회이다. 따라서 초창기 서구에서 범했던 정책 실패의 원인을 파악하고 10~20년 이후의 우리 사회상을 예측하며 정책을 수립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2. 차별은 틀렸고 '다름'과 '차이'가 맞습니다.

 

경남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들의 평균적인 분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시아 10여개 국가 출신의 취업 이주노동자들과 그 가족들, 결혼을 통하여 이주해온 이민자들, 중국 출신의 동포들이 대부분의 이주민을 이룬다.

 

1990년대 초반 한국은 경제 성장과 경제구조의 변화로 3D업종의 국내 취업 인구가 크게 줄면서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외국 인력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2006년 1.08명으로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고, 이는 결국 경제활동 인구의 감소로 이어져 앞으로도 외국인력의 유입을 지속시킬 것이다. 또한 물적, 인적 자원의 빈번한 국제적 이동과 사회구조적 변화는 전통적인 우리 사회의 결혼 풍습에도 빠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농촌총각이나 고령자, 저소득층 등 국내 결혼시장에서 소외된 이들이 결혼중개업자를 끼고 저개발국가에서 배우자를 구하는 흐름이 생겨났다. 이런 사회현상들이 결국 ‘다민족?다문화’ 사회로 성큼성큼 변화하는 모습으로 나타났고, 우리는 이에 대한 사회적 대응을 요구받고 있다.

 

우리는 개발과 발전이라는 산업화 시대의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그동안 앞만 보고 서구의 학문과 종교와 문화를 열심히 배워왔다. 겉으로는 싫어하면서도 서구를 부지런히 추종했던 일본을 그대로 따라갔다. 그 결과 우리는 지금 서구의 눈으로 아시아를 보고 있는 것이다.

 

해외시장에 대한 의존을 통해 살아가는 우리는 아시아 각 국가들과 겉으로는 경제협력관계를 맺고 아시아 출신의 이주노동력을 80만여 명이나 제공받고 있지만, 우리는 아시아를 경제 개발과 시장 지배의 대상으로만 볼 뿐 어깨를 맞댄 동반자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우리는 서구 강대국에는 열등감과, 오랑캐라고 불리는 약소 이민족에게는 우월감을 갖는 이중의 감정을 역사 속에 대물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살펴야 한다. 오늘날 선진국 출신의 외국인에게는 지나친 친절과 호감을 보이면서 가난한 아시아나 아프리카 출신의 이주민에게는 무시와 멸시를 드러내는 차별적인 이중의 감정은, 중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섬긴 전근대의 사대주의적 유산이며 아직 우리 스스로 역사에 대한 성실한 자성이 부족하다는 것의 징표인 것이다.

 

아시아는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리고 단일 문화권을 이루며 살아온 구미 대륙과는 달리 나라마다 다양한 종교, 언어, 인종, 문화, 역사 등의 고유한 자산과 유서 깊은 전통을 가지고 있다. 또한 아시아는 서로 다른 다양성이 충돌하기보다는 서로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관용의 일상화라는 동양철학과 가치관을 정신적 자산으로 물려받았다. 이러한 관용과 포용의 아시아적 전통과 문화유산이 근대 이후에는 서구 제국주의의 팽창과 더불어 큰 고통을 강요당하며 훼손되어 온 것이다.

 

‘다민족?다문화 공존 사회’의 가치관과 모델은 비서구권에 대한 우월주의적 서구문화 시야에서 벗어나 유구한 전통과 경험적 자산을 문화유산으로 물려받고 있는 아시아를 새롭게 발견하는 일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다문화 사회란 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틀림'과 '차별'이 아니라 '이해'와 '존중'을 통하여 관용과 공존으로 해소하는 사회이다. 남녀간, 세대간 그리고 내국인과 외국인 사이의 가치관과 문화의 다름과 차이가 상존하지만 어느 일방을 틀림으로 규정하여 항복과 수용을 강요하는 차별로 갈등과 통합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리석음의 극치이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노동환경과 근로조건의 열악함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으로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는 태도와 차별이라고 말한다. 한국인들이 가난한 나라 출신이라고 동정을 내세우며 자신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언행을 일삼고, 심지어 식생활과 종교, 문화의 차이까지도 가난한 원인으로 매도하며 훈계까지 할 때 느끼는 인간적인 모멸과 수모는 쉽게 지울 수가 없다고 한다.

 

한편 결혼이민자들의 정기적인 모임에서는 그들이 다문화가정을 이루며 한국 사회에 적응하면서 느낀 갖가지 사연과 깊은 고충을 종종 접하게 된다. 근래 들어서 지방자치단체와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대학에서도 다문화가정을 돕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나한테도 참여를 간청하기에 결혼이민자들이 한두 번씩 그런 모임에 참석했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결혼이민자들이 참석한 프로그램은 한국어 교육, 전통예절 교육, 한국 요리교육, 컴퓨터 배우기, 전통문화 체험 등 목록은 다양했다. 그러나 다문화가정의 결혼이민자들이 느낀 소감은, 처음에는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열심히 참여했는데, 대부분의 가르치는 강사들로부터 ‘빨리 배워 한국인이 되라’는 식의 강요 아닌 강요를 느끼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에 혼란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일방적으로 강요한다면 다문화 사회를 준비하는 태도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문화에 대한 이해와 배려 없는 우리 사회의 관심이 그들에게 값싼 동정심과 상처로 전락되지 않도록 유념해야 할 것이다.

 

서로 다른 인종과 문화에서 수 십 년 동안 살아온 사람들이 한 사회의 구성체로 공존하기 위해서는 건너야 할 강이 많다.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우선은 그 출발점이 다르다는 것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내하며,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던 ‘다름’을 배우려는 자세가 우리에게 기꺼이 필요하지 않을까?

 

3. 다민족? 다문화 열린 민족주의는 선택이 아닌 생존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여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회와 민족은 예외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객관적 환경의 도전 앞에 제대로 응전하지 못하면 역사의 생명력은 이어질 수가 없다. 각양각색의 다양하고 새로운 상품이 매일 등장하듯 다양한 가치관과 문화가 공존하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단일민족, 단일문화 중심의 폐쇄적 단일민족주의는 해방 후 남북통일 문제와 사회 통합의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제공해 온 것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다민족?다문화가 공존해야 하는 열린 민족주의 사회로의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전통적인 문화와 민족의 정체성을 허물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타인종과 문화를 이해와 존중으로 대하는 관용적 가치관을 계승하여 창조적 미래로 향하자는 것이다.

 

자신의 의견과 행동양식을 인정받는 길은 상대방의 의견과 행동양식을 존중해주는 것이다.

현대는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창조성이 요구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향한 창조적 발상이 필요해졌다. 획일적인 주입식 교육으로는 더 이상 창조적 미래를 기대할 수가 없기에 교육개혁가들은 다양한 학습에서 대안을 찾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문화를 소유한 구성원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회적 태도와 의식은 미래 한국의 창조성을 배양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최근 일본은 이주민 정책에 관한 중대한 정책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라는 사회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하여, 재일교포를 위시한 이주민에 대한 지문날인을 강요하던 식의 완강한 자세와는 달리 조심스럽게 이주민 정책과 개혁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2006년 규제개혁협의회(Council on Regulatory Reform)는 이주정책의 개혁과 관련하여 우선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침을 세웠다. 이는 향후 외국 인력의 유입이 확대되고 동아시아 지역 간의 국제협력이 강화될 것을 예상하여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강화하는 개혁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일본 이주정책 변화의 핵심은 인적자원 개발과 다문화 공존(multicultural coexistence) 정책에 있으며, 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현재 규제 중심 행정기관인 법무성 이민국과 보건노동복지부 이외의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민국은 “거주 신분(Status of Residence)”을 결정하고 지방자치단체는 “외국인등록 확인증(Foreigner's Registration Certificate)”을 발행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있지만, 지방자치단체가 자체적으로 외국인에 대한 특별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다. 그러나 향후 다문화 공존과 인적자원 관리를 핵심으로 하는 외국인 관련 정책을 위해 지방자치단체에 중요한 역할을 부여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근래 들어 한국 정부도 이주민 정책에 관해 중앙 정부 차원에서 변화의 흐름이 눈에 보인다. 정부는 외국인 정책의 체계적 수립 및 추진을 위하여 2007년 5월 17일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을 제정하였다. 이 법안 제정의 사회적 배경은 저출산 고령화 문제에 따른 체류외국인과 다문화가정의 증가 현상에 대처하고,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외국 인력자원 관리와 사회통합과정에서의 사회갈등을 최소화하려는 데 있다. 그러나 이 법안은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역할과 권한을 기대할 수가 없다는 측면에서 다민족, 다문화 공존과 통합을 위한 정책 목표의 구체적 행정수단으로서는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 법에 근거하여 향후 외국인정책에 대해 5년 단위로 기본계획을 수립할 때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과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지방의회에서 이주민 관련 지원 조례들을 만들고 있다. 경남은 기초자치단체에서 지원 조례를 만들어 다문화가정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다민족?다문화 공존의 정책 목표를 향한 사업 실적은 사회적 관심에 비하여 매우 미비한 실정이다. 관련 법률 근거와 행정 조직, 인적 자원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터에 재정이 넉넉하지 못한 지방정부에 과중한 부담만 요구할 수는 없지만, 지방정부의 의지로 집행할 수 있는 경남 지역의 거주 외국인들에 대한 초기적인 다민족?다문화 공존 사회 정책을 몇 가지 제안할 수 있다.

 

첫째로 초?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다민족?다문화의 날을 제정하여 다채로운 체험 학습 과정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다문화 체험 교육을 하게 하는 것이다. 둘째로 지방자치단체 홈페이지를 통한 온라인 행정서비스에 외국인 이주자들을 위해 자국의 언어로 각종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고, 셋째는 현재 경남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이민자 1세들 중에서 국제적 경쟁력을 지닌 인재들을 선발, 관리하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경남 지역에서 해외투자를 통한 동남아시아 현지로의 기업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현지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고 언어 소통이 가능한 전문 인력이 필요해졌다. 그러나 적절한 인재를 찾는 데 어려움이 있어서 국내 모기업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훈련시켜 해외진출에 활용하는 기업체들도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중 언어와 문화를 구사할 수 있는 이민자 2세들에 대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정책 마련이 중요해진다.

 

나는 한국의 이주노동자 정책을 연구하고 있는 재미동포 출신 교수를 통해서 얼마 전 체험담을 들었다. 그 자신이 10대에 이민을 가서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거쳐 국립대 부교수에 오른 이민자 출신인 그는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들처럼 미국에서 자신도 동일한 경험을 겪었다고 한다. 이민자들이 겪는 음식, 언어, 종교 등 문화적 갈등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그 사회에 동화되어 극복되었지만, 인종의 정체성과 관련한 갈등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 사관학교 출신인 그는 각종 장학금 혜택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는데 외국 출신 이민자에게도 자국 시민으로서 평등한 기회와 권리를 부여해준 미국 사회에 고마움을 느꼈다고 한다. 소수민족 출신으로 소외를 받고 살아온 경험들도 있지만, 미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주인 된 입장에서 의무와 권리를 지켜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지니게 됐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 소수민족 출신은 과연 한국인이라는 자발적인 주체 의식을 형성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 묻고 싶다. 그들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요구하려면 한국 사회 가 그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인정해주는 자세를 먼저 보여주지 않으면 안된다. 억지로 강요할수록 그들은 마음의 문을 더 굳세게 닫을 것이다. 토마스 제퍼슨은 사람들을 강압적으로 지배하면 절반은 바보가 되고 절반은 위선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지금 한국 사회의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의 정책은 우리 사회의 소수인종 출신자들과 그 2세들이 20~30년 후에 스스로 대한민국 구성원이라는 자발적 정체성을 지닐 수 있도록 그들에게 얼마나 열린 민족주의 정책을 배려하고 있는지 시민사회가 자성해 보기를 권한다.

 

21세기 세계화된 지구촌은 한국 사회에 더 이상 단일민족 표어가 통하도록 면죄부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 고민이다. 국민국가 시대는 끝났고 이제는 다민족 사회다. 다민족 사회로의 진입은 결코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정체성을 통째로 바꾸는 문제임을 외면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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