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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종간 격차를 고려해야


현재 고용허가제는 제조업, 건설업, 농축산업, 서비스업, 어업 업종 등에 비전문 인력을 공급하고 있다. 2009년 2월 기준으로 취업자의 92%가 제조업에 취업하고 있어 이 부분의 높은 수요를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나머지 8%에 점하는 농축산업, 어업 등에 종사하는 취업자들은 제조업보다 더 열악한 저임금과 근로 환경에 놓여 있다. 농축산업과 어업은 업종의 특성상 일일 노동 시간 한도와 초과 근로수당 등에서 근로기준법의 사각 지대에 놓여 있는 점이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또 현행 고용허가제는 업종간 변경을 사실상 금지하고 있으므로 취업자들이 선호하는 제조업 으로의 변경도 거의 불가능하다.(예외적으로 노동부장관의 허락을 얻으면 가능하다고 되어 있으나 현실적으로 매우 힘들다. 농업 취업자들이 많은 스리랑카의 경우 스리랑카 정부 차원에서 한국에 업종 전환을 가능하게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러한 불균등한 노동 조건은 결국 취업자들의 이탈로 해소될 수밖에 없다. 심지어 탈법이나 불법에 이용될 여지마저 존재한다. 송출국의 취업 희망자들에게도 국내 농축산업과 어업은 비인기 업종이기에 정상적인 방법으로 취업 입국이 불가능한 이들이 브로커 등을 통해 한국에 입국하는 방편으로 어업에 취업하는 경우도 있다.(인도네시아 취업 희망자가 본국에서 한국어시험에 탈락한 후, 본국 노동부 직원에게 400여 만원의 뇌물을 주어 한국에 취업할 수 있었으나 그 직원이 약속한 것과 달리 어업 업종이었음. 배를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는 취업자는 강도 높은 업무에 적응하지 못해 한 달 후 해고됨) 2005년까지만 해도 제조업 등 여타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근로조건이 용이한 건설업과 서비스업의 경우 외국국적 동포에게만 취업이 허용되었는데, 동포 인력의 과잉공급으로 인해 산업현장에서 내국인 노동자와 동포 노동자 사이에 마찰이 일어난다는 여론이 있었다. 이를 반영하여 최근에는 정부가 건설업에 공급하는 동포 인력을 조절한 바 있다. 내국인 노동자의 반발이 있는 부분만 인력 수급 조절을 하는 데 그치지 말고 어업이나 농수산업에도 취업 외국인의 수요와 편의가 적극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이는 노동법 개정과 함께 고용허가제도만 아니라 노동법의 손질도 함께 요구되는 부분이다. 어업이나 농축산업은 산업구조적으로 낙후성이 중소 제조업체보다 훨씬 더 심각하며 전근대적인 잔재까지 남아 있어 오래전부터 내국인의 기피 업종으로 굳어져 왔다. 이런 현실에서 산업 구조의 낙후성에는 전혀 손대지 않고 내국인 자리를 고스란히 ‘만만한’ 외국인으로 대체하는 후진적 행태가 고용허가제의 특징으로 자리잡아서는 안된다.


사용자의 법 위반에는 별다른 제재 없어


현행 고용허가제는 이름에서 드러나듯 철저하게 사용자의 이익과 편의에 기울어져 있는 제도이다. 외국인력제도의 본래 취지는 외국 인력을 돕는 데 있는 것도, 사용자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노동시장 보완성 원칙과 내국인 인력 보충이라는 제도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저임금 헐값에 인력을 사용하는 제도로 변질되었다는 점에서 고용허가제는 파행과 모순을 노정할 수밖에 없다. 고용-피고용 관계가 수평적이지 못한 점, 외국인이라는 약점 등으로 이주노동자가 고용허가제에서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현행 고용허가제는 사용자의 이익 대변 제도라는 점에서 취업자의 근로 조건에 상당 부분 제약을 가하고 있는 것에 반해 사용자의 불법 행위는 눈감거나 솜방망이 처벌을 가하는 경우가 많다. 불법적으로 외국인을 고용하는 행위 등으로 고용 규제 조처를 받은 경우에도 현 정부 들어 기업 프렌들리 논조에 따라 대부분 사면 혜택을 주고 있다. 체류 기간을 하루만 넘겨도 체류자격 회복을 되돌릴 수 없는 엄격한 취업자의 처지에 비하면, 사용자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지나치게 편향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불법 외국인 고용으로 사용자가 제재를 받았다가 사면을 받는다면, 불법으로 쓰인 외국인도 마찬가지 대우를 받는 것이 논리에 맞다. 그러나 고용허가제의 틀 밖으로 나갔을 경우 취업자는 강제퇴거 대상일 뿐 구제를 받는 일이 없다.) 당국의 태도를 보면 사용자-취업자 사이에서 합리적인 중재나 취업자의 사후관리를 책임지는 위치를 망각하고, 수수방관하거나 사용자 편에 치우칠 때가 많다.


비숙련 인력제도와 한국의 노동시장


시장주의는 시장의 자율적 기능을 맹신하는 이념이지만, 한국의 시장주의는 시장의 허울을 쓴 관치주의일 때가 많다. 고용허가제에도 이러한 경향은 관철된다. 현행 고용허가제도는 저임금이 유일한 경쟁력인 사양 산업에 대해 국가가 책임지고 외국 인력을 공급하는 제도로서 시장에서의 자율적 구조조정 원리가 작동되지 않는 영역이다. 시장 경쟁력만 따지자면 임금 경쟁력에만 기댄 3D 업종은 이미 80년대에 몰락하여 90년대에 완전히 퇴출되었을 운명이다. 그러나 정부는 까다로운 구조조정 정책에 손대기를 거부하고 값싼 외국인력으로서 한계기업들을 연명시켜주는 길을 택했다.

단순인력 공급 위주의 현행 고용허가제는 시장의 요구를 제대로 담아내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 우리 사회의 고령화 현실을 민첩하게 수용하지 못한다. 한국은 2000년 65세 이상 인구가 7.2%에 달해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고, 이 추세대로라면 65세 이상 인구가 2019년 14%에 이르고, 2026년에는 20%에 이르는 초고령 사회에 이를 전망이다. 따라서 현재의 저숙련 외국인력 제도는 갈수록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지금부터라도 대대적인 보완이 요구된다.

고령화 문제는 노동시장의 숙련 단절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 문제의 해소 방안으로 우선적으로는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숙련의 기준과 평가 제도를 마련하여 숙련 기능인력 제도 도입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 제도는 숙련도가 높은 장기 체류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도 기대된다. 물론 숙련인력제도는 구직과 구인의 자율성이 시장에서 함께 작동될 수 있도록 해야 중소기업 산업합리화 정책에도 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고용부담금 제도 도입의 필요성


국가가 사용자에게 값싼 저임금 노동력을 제공했다면, 사용자에게도 혜택을 받은 것만큼 책임과 의무를 부과해야 마땅하다. 그렇게 하지 않는 한 고용허가제는 한국인 저임금 노동력을 외국인으로 대체한 제도에 불과해질 따름이다. 고용부담금(LEVY) 제도 등을 통해 중소기업의 기술 개발과 경영 합리화를 통한 지속가능한 제조업 모델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국내 노동시장에서 고용허가제 도입으로 가장 우려하고 있는 측면은 내국인 일자리 잠식과 내국인 근로조건 약화에 대한 우려이다. 고용허가제는 내국인 노동시장 보호를 위해 고용주의 내국인 구인 노력 의무화 조항을 두고 있지만 이미 형식적 조처에 불과하다. 또 근로조건 약화를 방지하기 위해 근로기분법 적용으로 최저임금을 보장하고 있지만 수습 기간 3개월 적용과 표준 근로계약서 양식에서 숙박 비용 공제 등 고용주의 편익을 일방적으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운영됨으로써 이 2가지 문제는 국내노동시장 잠식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이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위해서도 고용부담금 제도의 활용이 필요하다.

고용부담금 제도는 내국인 노동시장 보호 기능뿐만 아니라 고용허가제 도입 규모를 조절하는 시장 메카니즘으로도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외국인력 도입에 따른 사회적 비용 부담의 재원으로도 쓰일 수 있다.

결론에 대신하여

저임금 외국인력 공급 제도로 자리를 굳히고 있는 고용허가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용자-노동자의 갈등을 표면화시킬 수밖에 없는 제도이다. 이 점을 개선하기 위해 1)신규 인력 도입을 중단하고 장기 불법체류자를 숙련기능인력제도 도입과 함께 고용허가제도로 해소 2)취업 외국인 인권 보호 3) 고용허가제도의 공공성, 투명성 강화를 위한, 정부기관의 해외인력 선발 과정에서 시민단체의 감시와 모니터링의 제도화 4) 고용부담금 제도 도입을 통한 중소기업 산업합리화 정책 강구 등의 대책을 주문하고자 한다. 특히 불법체류자의 경우 현재 10%대 비율로는 작은은 규모처럼 보이지만, 숫자로는 20만명에 육박하고 있어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들을 법외 존재로 사각지대에 놓이게 하기보다 차라리 합법화의 혜택을 주어 제도 안에서 해소하는 것이 정부, 시장, 노동자 모두에게 고루 이익이 될 것이다.

단기 순환 외국인력 정책은 스스로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행정력의 집행 없이는 불법체류자를 끊임없이 양산할 수밖에 없는 제도이다. 그나마 대화의 통로를 열어놓았던 지난 정부에 비해 모든 것을 행정력에 의존하여 불법체류자 문제를 해소하고자 하는 이 정부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더 이상 단기간에 소모시킬 인력으로만 외국인력을 치부하지 말고,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노동력 공급 정책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 바람직하며, 궁극적으로 현행 고용허가제를 대폭 보완하거나 숙련인력 도입 등 새로운 차원의 제도적 탈바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 왔다고 생각한다. 단기순환정책을 견지하다가 끝내는 장기 체류한 이주민들에게 영주 자격을 부여하여 이주노동 문제를 큰 사회적 비용 없이 해소한 독일 정부의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물론 필자의 의견에도 많은 반박과 비판이 나올 수 있다. 가령 필자가 주장한 숙련인력의 경우 산업 현장에서는 숙련 인력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고, 특별한 기술이나 자격증 없이 한국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잘 견디는 ‘맷집’을 숙련성으로 호도한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이런 의문은 노동 숙련성에 대해 우리 사회가 논의의 장을 마련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 모든 비판과 논쟁에 문을 열어놓고, 지난 6년간 치른 비싼 경험을 통해 고용허가제가 나아갈 방향을 지금부터라도 머리 맞대고 토론해보도록 하자.



참고 문헌

-국내 저서-

유길상, 이정혜, 이규용, 『외국인력제도의 국제비교』, 한국노동연구원, 2004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 『이주민의 대한민국』, 2008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 『한국의 이주노동자 고용과 노동실태: 현황과 과제』, 2008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 『외국인고용허가제 5주년, 평가와 전망』, 2009

-역서-

권기섭 외, 『7개국의 외국인력수입제도 보고서』【원제: 재외외국인 외국인노동자 수입제도 조사 보고서, 일본 삼정정보개발(주)종합연구소, 2003】, 노동부,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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