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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총선에 즈음한 다문화가정 및 국내 체류 이주민 정책 공약 제안

이 철승 목사(경남이주민센터 대표)

1. 공약 제안 배경

지난 1991년 해외투자법인 산업연수생을 필두로 비전문 외국 인력을 도입한 이래 한국은 다문화사회에 급속히 진입하면서 이주민 정책 또한 많은 부분에서 개선을 보이고 있다. 비전문 외국인 취업 제도를 다듬어 산업연수생 제도를 폐지하고 고용허가제로 일원화했으며(2007),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2007), 다문화가족지원법(2008), 각 지방자치단체의 조례 제정을 통해 다문화가족을 포함한 이주민을 지원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경상남도의 경우 2012년 이주민 지원 예산에 106억 5천 6백만원을 배정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 정책 중 대부분은 정부가 자발적으로 법규를 만든 것이라기보다 인권 운동 단체나 이주민 지원 단체들의 끈질긴 목소리가 정부 정책의 개선을 이끌어낸 것에 힘입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여전히 이주민의 인권 신장을 가로막는 잔재가 남아있어 개선 대책이 요구된다. 물론 혈통 민족주의가 여전히 강하고 문화의 단일성이 강조되는 한국 사회의 특성상 한국 사회의 새로운 소수자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이주민의 인권 개선을 위한 노력들은 부딪쳐야 할 난관이 많다.

다문화가 다양성을 존중하는 가치와 맞물린 만큼 경남이주민센터는 다문화 정책과 관련한 여러 가지 다른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아직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한 부분은 존중하고자 한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유엔에서 마련한 법제나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시급히 필요한 최소한의 조처라고 판단하는 부분, 즉 인종차별금지, 이주아동 권리 보호,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노동자 구제 등 3가지 문제에 관해서는 적극적인 입법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바야흐로 총선 시점을 맞이하여 각 정당에서 앞다투어 이주민 지원 정책을 발표하리라고 기대한다. 각 정당에서 국회의원 비례대표로 이주민 영입을 시도하는 것도 선거철마다 일어나는 풍경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소위 ‘표심’을 위한 전략에 그치거나 이주민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데 그친다는 우려가 있었다. 일례로, 2000년대 초기에 ‘현대판 노예제’라는 악명을 떨치던 외국인 산업연수생 제도에 대한 폐지 여론이 드높던 시절, 한나라당은 대통령 선거에서 연수생 제도 폐지를 공약으로 제시했으나, 선거 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도로 물리고 이익단체들과 함께 제도 사수에 힘을 기울인 적이 있다.

경남이주민센터는 이번 19대 총선만큼은 정당들이 선거 표를 의식한 선심 공약을 남발하지 않고 진정성 있는 이주민 지원 정책을 갖추기를 바라며, 본 단체가 제안하는 개선 과제들이 십분 반영되어 이주민 인권에 실질적인 개선 효과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2. 주요 3개 정책 개선 방향

제정 법률

지원 대상

인종차별금지법

국적취득자 포함한 모든 이주민

이주아동권리보장에 관한 법률

외국인 부모와의 동반입국 후 미등록 체류자, 초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미등록 체류자 자녀, 국내 출생 무국적자

이주민특별체류허가에 관한 법률

국내 미등록 체류 10년 이상 외국인

1) 인종차별금지법 제정

<도입 취지>

외국인이거나 또는 국적을 취득했음에도 인종적 또는 민족적 특성을 이유로 일상생활에서 차별을 겪는 사례가 빈번히 보고되고 있다.

2011년 서울대 중앙다문화교육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결혼이민자의 57.4%가 차별을 겪은 적이 있다고 호소한 바 있다. 국민의 배우자로서 국민에 준하는 대우가 보장된 결혼이민자의 차별 피해가 이 정도라면, 이주민 중 비국민의 처지에 있는 사람에 대한 차별은 훨씬 더 심각함을 알 수 있다. 비공식적인 견해에 따르면 인권단체에 일각에서는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의 인종차별이 횡행하는 사회로까지 거론하기도 한다. 이는 국가인권위원에 그동안 인종차별과 관련하여 진정된 수백 건의 사례들이 실태를 말해준다.

2006년 이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되어 인종차별 결정을 받은 사례들 중에는 2007년 아프리카인의 레스토랑 출입 거부, 2008년 아프리카인의 상업시설 출입 제한, 2008년 외국인 산재노동자의 직업재활훈련 신청 거부, 2009년 외국인의 인터넷전화 이용 차별, 2010년 외국인의 모기지 보험 가입 거부 등 다수가 있다. 국가인권위가 차별 시정 권고 결정을 내린 가장 최근의 사례는, 지난 해 9월 부산에 거주하는 국적취득자 구수진 씨가 단지 용모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대중목욕탕 이용을 거부당한 일로 떠들썩했던 사건이다.

한국의 인종차별 실태는 국제적으로도 알려져, 정부가 1978년 유엔 인종차별철폐협약을 비준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로부터 1985년, 1993년, 2004년, 2006년, 2007년 등 여러 차례에 걸쳐 인종차별 시정 요구를 받고 있다. 유엔은 한국이 인간관계의 전 영역에서 국민과 비국민간의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국민’ 외에 ‘비국민’의 권리를 전혀 언급하지 않은 헌법을 위시하여 한국의 국내 법규는 인종차별에 대응하는 데 매우 취약하다. 한국 법 체계 중 인종차별을 다룬 법이 전혀 없는 것은 한국 법이 국민국가 체제를 전적으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인종차별철폐협약에 가입한 이상 국내법과 국제법과의 조화를 이루어야 할 의무가 있으므로 국내법을 개선해야 할 요건이 성립한다. 또 2004년 헌법재판소에서 기본권의 주체에 대해 국민과 유사한 지위를 누리는 외국인도 포함된다고 판결한 바 있으므로, 인종을 이유로 차별하는 것은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위헌적 태도라고 할 수도 있다. 다만 헌재는 2007년 사회적 기본권의 경우 국민만 인정된다고 판결한 적은 있다.

정치권에서도 인종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 움직임은 이미 있었다. 2009년 시내버스에서 몰지각한 한 내국인 남자가 외국인을 인종적으로 모독한 사건으로 검찰에 기소되어 최초로 유죄판결을 받아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일이 있었다. 당시 검찰은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현행 법률이 없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모독죄로 기소하자, 구 민주당 전병헌 의원이 인종차별금지법을 마련하여 입법예고에 돌입한 적이 있다. 전 의원의 법안에는 고용, 재화?용역 공급?이용, 교통수단, 상업시설 공급?이용, 토지 주거시설 공급?이용, 교육기회, 괴롭힘. 수사?재판, 의료서비스 제공 등 생활의 광범위한 영역에서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법 제정의 앞길은 순탄치 않았다. 보수단체와 일부 종교단체의 강력한 반발로 공청회조차 제대로 열지 못한 채 이 법안은 몇 년 째 국회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중이다.

또 지난 해 대중목욕탕 외국인 출입 거부 사건을 계기로 경남이주민센터는 대통령 소속 사회통합위원회에 이주민 225명의 서명과 함께 ‘외국인 이주민 인종차별 금지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건의서를 제출한 바 있다.

이주민이 140만 명을 넘어섰고 다문화사회로 급속히 재편하는 한국 사회는 사회적 소수자인 이주민을 보호하고 사회갈등을 예방할 수 있는 법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과제를 더는 늦출 수 없게 되었다. 대표적인 다인종?다민족 국가인 미국의 경우 흑인 민권 운동의 열풍을 계기로 1964년 존슨 행정부 시절 민권법을 제정하여 인종차별 금지와 사회통합의 기초를 닦았다. 한국 역시 다문화사회 진입 초기에 해당하는 지금이라도 단일문화권의 틀 속에 있는 법을 바꾸고 제도를 정비하지 않으면 값비싼 홍역을 치를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벌써부터 김해시 구 상권 일대 이주민 거주 지역의 게토화 현상이나 이 지역에 대해 우범지대 운운하는 부정적 인식의 확산 등 인종 분리?차별이 이미 현실에서 구조화되고 있는 현실을 경계해야 한다.

<내용>

헌법상의 평등 이념과 인간 존엄성에 근거하여 고용, 혼인, 주거, 교육, 인간관계 등에서 인종이나 출신 국적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함. 대표적으로는 사법기관 앞에서 평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 국가가 국민에게 부여한 안전 및 보호를 외국인도 동등하게 받을 권리 등이 있음. 단 차별금지의 예외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면 명확하게 규정함.

<쟁점>

○ 다른 소외계층과의 형평성

현재 한국 법체계에서 차별 금지가 법적으로 마련된 영역은 여성이나 장애인 고용 등 일부에 그치므로, 인종차별금지법을 마련할 경우 당장은 형평성의 시비를 부를 수도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다른 소외 계층의 차별 방지법을 제정하는 데 추진력이 될 것으로 기대함.

○ 인종차별 금지 영역을 정치?사회적인 영역에 한정할 것인지, 삶의 전 영역까지 포괄할 것인지는 신중히 검토함.

○ 법적 제재의 한도

인종차별금지법을 위반할 경우 법적 제재를 어느 정도까지 설정할지에 대해서도 신중히 검토해야 함. 인신에 대한 처벌을 포함할 경우 이미 인종차별법을 마련한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드물고, 반대로 벌금 처분이나 권고 등의 약소한 제재에 그칠 경우 법이 유명무실화될 소지도 있음.

2) 이주아동권리보장에 관한 법률 제정

<취지>

2010년 현재 국내에는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 출신의 미성년 아동들이 2만5천명 ~ 3만명 가량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상당수는 단기체류비자를 받아 부모와 동반 입국한 후 출국 기한을 넘긴 미등록 체류 상태에 있는 아동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국내에서 불법체류자의 자녀로 출생하여 출생신고조차 하지 못한 무국적 자녀는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 실정이다. 불법체류자의 자녀는 부모가 본국 대사관에 출생신고를 할 수는 있지만 출생증명서를 첨부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하다. 본 단체가 제안하는 이주아동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은 부모와 동반입국한 후 부모와 함께 불법체류자로 전락했거나 한국에서 불법체류 신분의 부모에게서 출생한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다.

속인주의(屬人主義)를 따르는 한국은 출생한 나라가 아니라 부모의 체류 자격에 따라 그 자녀도 체류 자격이 결정되므로, 불법체류자의 자녀도 불법체류 신분을 그대로 대물림 받을 수밖에 없다. 국민국가와 혈통주의에 근거한 이러한 속인주의는 다문화시대에 늘어만 가는 ‘죄 없는’ 미성년 이주민 자녀들의 처지를 외면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한국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근거가 없는 무국적자 아동들은 의료, 교육 등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권과 사회복지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 특히 이들이 배제당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권리 중 하나는 교육권이다.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 통계에서는 전체 학령기 이주민 아동 43,649명 중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동이 40.4%(17,634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무국적자 아동이 학교를 못 다니는 등 기본권 유린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2001년 의무교육과정의 경우 개별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취학이 가능할 수 있도록 했고, 2006년에는 졸업을 앞둔 취학 아동이 있을 경우 불법체류자 부모의 자진출국 시한을 한시적으로 늦추는 등의 조처를 취한 적도 있다. 2003년에는 이주아동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경우 합법체류자임을 증명하는 외국인 등록 증명 대신 거주지 확인 서류만 구비하면 입학을 허용함으로써 미등록 이주아동의 취학을 가능하게 했고, 2010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재차 개정함으로써 제한 없는 초등학교의 문호를 중등교육과정까지 넓혔다.

그러나 여론이 비등해지면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해당 사안에만 맞추어 조치를 마련하는 정부의 점진적인 정책은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미등록 아동의 취학만 하더라도 교육부에서는 시행령까지 개정하며 교육권을 보장하고 있는 반면, 출입국관리법에는 교사를 포함한 공무원이 미등록 외국인 아동을 인지할 경우 출입국에 신고하게 되어 있어 서로 모순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다문화시대의 위상에 걸맞게 이주아동의 인권 보호를 근본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을 체계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절실하다는 목소리를 잠재울 수 없는 것이다.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할 경우 이를 악용하여 탈법이 고개를 들기 마련이다. 불법체류자 자녀에게 체류자격을 주지 않는 현행 법의 틈새를 타고 탈법도 뿌리내리고 있는 실정이다. 병·의원과 결탁하여 불법체류자 자녀를 국민의 출생 자녀로 위장하여 국적을 얻게 하는 브로커가 암약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해 경찰은 출생 직후 베트남에 출국하여 돌아오지 않는 한국 국적 아동이 누적 통계치로 수 천 명에 이른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이주아동의 권리는 유엔이 제정한 각종 협약에서도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 1990년에 제정되었지만 한국이 아직 비준하지 않은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에 관한 국제협약(유엔이주노동자권리협약)’은 제24조에서 모든 어린이는 출생 후 즉시 등록되고, 출생한 나라의 국적을 취득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제30조에서 “이주노동자의 자녀는 해당국의 국민과의 평등한 대우를 기초로 하여 교육을 받을 기본권을 가진다.”고 되어 있다. 무엇보다 한국이 1991년 비준한 ‘아동의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유엔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의 권리에 대해 생존, 발달, 보호, 참여 등 4대 영역으로 나누고 28조에 ‘발달’에 해당하는 핵심적 권리로서 교육권을 명시하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이주민 인권단체들은 수년 전부터 이주아동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무국적 신분의 아동을 보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주아동 인권을 강조하는 목소리는 시민단체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2010년 한나라당 김동성 의원이 이주아동권리보장법안을 발의하는 등 정치권 일부도 이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김 의원의 법안은 무국적 이주아동이 국내에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으며, 이주아동에게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고 차별 없는 생활을 보장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바야흐로 아동 인권은 진보와 보수의 이념 문제가 아니라는 데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법 제정의 기운은 충분히 무르익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독일, 일본 등 이주민 유입 인구가 많은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볼 때 해당 국가는 불법체류자 단속이 명문화된 경우라도 지자체의 재량에 따라 미등록 이주 아동의 교육권만큼은 보장하는 추세에 있다. 이 부분에서 가장 앞선 미국의 경우 1982년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미등록 이주아동이라도 고등학교까지는 취학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되어 있다.

<내용>

무국적 아동은 인도적인 차원에서 특별체류자격을 부여하여 성인이 될 때까지 교육, 의료, 사회보장서비스 등 사회 전 영역에 걸쳐서 내국인 아동이나 등록 이주아동과 동등한 권리를 보장. 특히 출입국 공무원이 불법체류자의 자녀를 추적하여 그 부모를 검거하는 행위를 엄금. 국내에 부모나 보호자가 없는 아동의 경우 정부에서 후견인을 지정하거나 위탁양육을 지원.

3) 이주민 특별체류허가에 관한 법률 제정

<취지>

2011년 현재 국내에 거주하는 이주민 중 기간 내 출국하지 않고 체류하고 있는 이들은 17만 여 명에 이르며, 그 기간이 10년 이상을 도과한 이는 13%인 2만2천여명에 달한다. 이들은 대부분 경제적이거나 일부 정치적인 이유로 본국 귀환을 선택하지 못하고 한국 사회 정착 후 동화되어 살고 있는 이들이다.

장기 불법체류자들이 겪고 있는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인지는 국내에서 체계적으로 조사된 바가 거의 없다. 그러나 이주민 유입이 많은 해외 인력 송입국과 인력 송출국의 경우 이주노동을 통한 가족관계 단절을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큰 고통으로 분류하고 이에 대한 대책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연구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장기 불법체류자들일수록 본국에 있는 가족과 떨어져 있는 기간이 그만큼 길어져 가족해체나 다름없는 고통을 겪고 있으므로, 이들이 귀환하더라도 가족이나 본국 사회와 재통합하는 과정을 치르는 데 어려움이 있음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한국에 오래 체류할수록 본국 적응이 힘들다는 것은 많은 이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2003년에 입국하여 아직 체류 중인 한 이주노동자의 경우 본국을 떠난 후에 막내 아이가 태어났으며 본국에서 보내온 영상을 통해 아이 얼굴을 본 것이 전부라고 한다. 가족해체의 고통은 체류자 본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아시아의 이주노동자 귀환운동 단체들에 따르면 타국에 일하러 간 부모와 떨어져 있는 기간이 길수록 본국에 있는 자녀들도 성장기를 거치는 동안 회복하기 힘든 스트레스를 겪는다고 보고되고 있다.

또 장기 불법체류자들은 출입국 단속에 대한 공포로 겪어야 하는 심리적 압박감도 엄청나다. 이들은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거나 자유롭게 사람을 만나러 다니지 못하며, 사람들의 눈을 피해 야간에만 일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숨 쉬고 살아도 그림자처럼 지내야 하는 이들은 신분상의 약점 때문에 임금체불 등 노동권 피해를 당하기 쉬우며, 사기나 강도 등 범죄 노출 등에도 취약하다. 또 피해를 당하더라도 법적 조력을 받는 데도 적극적이지 못하다.

정부는 늘상 공권력을 통해 불법체류자를 엄단하겠다고 공언해 왔지만 국가의 행정적인 측면에서 볼 때도 불법체류자 문제를 강제 퇴거로 해소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2004년 고용허가제 도입 당시 정부는 불법체류자를 5만 명 이상으로 줄일 수 있다고 호언했지만, 강력한 단속에도 불구하고 그 숫자가 10만 명 이하로 떨어진 적은 없었다. 오히려 필사적으로 도주하려는 불법체류자를 단속하는 과정에서 인권 침해 시비만 종종 불러왔고 심지어 사망 등의 극단적인 사태까지 낳기도 한다.

불법체류자 문제는 처벌이 아닌 포용을 통해서만 풀 수 있다는 것을 증언해주는 실례가 이미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불법체류자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외국국적동포의 경우 정부는 2005년, 2006년 두 차례에 걸친 자진귀국 프로그램(자진귀국한 불법체류자는 출국 후 1년 내 취업 사증을 발급함)을 통해 비로소 불법체류 문제를 해소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비동포 이주노동자에게는 정주화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적극적인 사면 조치를 실시한 적은 없다.

다만 지난 2003년 고용허가제 도입을 한 해 앞두고 당시 20여만 명으로 불어난 불법체류자 처리 문제에 골머리를 앓던 정부는, 고용허가제의 연착륙을 위해 기존의 혼란스러운 판을 정리하려는 의도에서 당시 4년 미만의 불법체류자를 대상으로 제한적 양성화 조처를 실시한 적이 있다. 또 참여정부 말기인 2007년 고용허가제 인력송출국가 출신 이주노동자들에 한해 사면 실시를 추진하려다 정권이 교체되는 바람에 불발에 그친 적이 있다. 어쨌든 장기 불법체류자를 줄곧 배제한 것은 한국 정부의 고유한 방침이 되어왔다. 불법체류 자체를 범죄로 보는 정부는 미등록 상태의 체류 기간이 장기화할수록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강한 탓도 있다. 그러나 프랑스 등 이주민 유입 인구가 많은 유럽의 경우 자국 문화에 이미 동화된 장기 불법체류자를 우선적으로 구제하는 것이 흐름으로 되어 있다.

장기 체류자에 대한 구제는 비단 인권옹호적 측면에서만 유효한 것은 아니다. 한국어에 익숙하고 업무의 숙련성이 뛰어난 장기 불법체류자는 사업장에서 선호하는 노동력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흔히 간과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최대 5년 미만(실제로는 4년 10개월)의 취업 만료 기간이 도래한 고용허가제 취업자들에게 사용자의 재고용 의사가 있으면 출국 후 다시 입국이 가능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한 것도(5+5 제도), 장기 체류자에 대한 기업의 선호도가 높기 때문이다. 취업 만료자에게 재고용이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놓은 것은 정부가 단순기능 외국인력에 대해 표방한 단기순환정책(짧은 몇 년의 기간 동안 1회에 한해 인력을 사용하고 나서, 다른 인력으로 대체하는 정책)을 접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단기순환정책을 거두어들이는 것은 정부 스스로 장기 체류자가 한국 땅에 거주할 근거를 마련해 놓는 태도와도 상통한다.

경남이주민센터에서 해마다 경남지역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실태조사에 따르면 미등록 불법체류자의 임금이 합법체류자의 임금을 늘상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11년 조사에서 합법체류자 평균 156.66만원, 불법체류자 평균163.38만원) 이는 합법체류자의 신분이 사업장에 묶여 있는 등 근로조건이 열악하기도 하지만, 불법체류자의 업무 숙련성에 기인하는 점도 크다. 장기 숙련 체류자에 대한 산업적 수요가 엄연히 존재하는 한 미등록 상태라는 이유로 배제?추방을 통해 청산하는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무조건 배제하기보다 한국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하여 특별체류허가를 통해 합법적인 노동력으로 흡수하는 것이 합리적인 측면에도 부합할 것이다.

불법체류자에 대한 양성 조치는 외국의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일본의 경우 2006년 자국에서 출생한 자녀를 양육할 필요성이 인정되거나, 오랜 체류 생활로 일본에 동화되었다고 판단하는 외국인 체류자에게 합법 체류의 길을 열어준 적이 있다. 불법체류자 단속에 단호하다고 알려진 미국도 마찬가지여서 강경보수 레이건 행정부 시절인 1986년 불법체류자 600여만 명 중 260여만 명을 대거 사면한 전례가 있다.

<내용>

10년 이상을 도과한 불법체류자에게 인도적인 견지에서 특별체류비자를 발급.

<쟁점>

○ 합법체류자와의 형평성 문제

특별체류비자 발급 대상자에게 영주권 신청 자격(5년 이상 국내 체류자는 영주권 신청 가능)도 부여할지, 합법 이주노동자와의 형평성(고용허가제 취업자는 영주권 신청을 막기 위해 5년 미만의 사증을 발급하며, 사용자의 재고용 의사가 있을 경우 만기 출국 후 재입국하여 다시 체류 자격 부여)을 고려하여 영주권을 제한할지는 논의 필요. 독일의 경우 2005년 신이민법 제정 이후 사면된 불법체류자는 영주권을 부여하지 않고 한정적 거주권만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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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저숙련 외국인제도, 이대로는 안된다 - 고용허가제 6년의 현황, 문제와 개선책① [9] 관리자 2010-09-01 116911
48 다민족ㆍ다문화 시대, 우리의 선택 [6] 관리자 2010-02-24 105941
47 다민족ㆍ다문화사회와 한국사회의 과제 [10] 관리자 2010-02-24 54336
46 외국인 고용허가제 5주년, 평가와 전망 관리자 2010-02-24 13637
45 중국과 옛 소련 동포들이 외국인인가 [5] imagefile 관리자 2009-04-05 85466
44 이주여성의 인권문제와 정책적 제언 [6] file 이철승 2008-06-27 86502
43 이주노동자의 노동실태 변화와 해결과제 [8] file 이철승 2008-06-27 62562
42 다민족·다문화 시대의 경남만들기 [5] 이철승 2007-10-31 69684
41 외국인이주노동자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한 제언 ? [5] 이철승 2007-10-31 107871
40 다인종·다문화 공생사회로 가는 길 [5] 이철승 2007-09-07 52960
39 다문화공생사회와 우리사회의 과제 [4] file 이철승 2007-04-13 47600
38 이주노동자 강제추방과 정주화 방지 멈추라 [6] 이철승 2007-03-16 67153